2024 인문 웨이브, 울산 : 대화의식탁_대화의 행복(배주홍, 임성애 지관서가 매니아)

20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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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식탁: 대화의 행복>

일시 : 2024년 9월 26일(목) 14:00~16:00

진행 : 임성애, 배주홍(지관서가 매니아)

참석 : 영글, 병덕, 이솝이(별명)

장소 : 장생포 지관서가




‘대화의식탁’

대화란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를 의미한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행위다. 오가는 말이나 몸짓이 있고서 대화는 성립한다. 대화의식탁은 덴마크 성인 인생학교 폴케호이스콜레(folkehøjskole)의 프로그램을 자유학교에서 한국 환경에 맞게 구현했다. ‘대화를 통해서 소통과 연결을 촉진하는 시간’으로 2023년 11월부터 꾸준하게 진행해온 지관서가의 인문특강이다. ‘특강’의 이름이 붙었지만 삼삼오오 모여 질문카드를 열며 대화를 나누는 자리다. ‘2024 인문웨이브, 울산’ 기간에는 대화의 선물, 대화의 기쁨, 대화의 행복이라는 주제로 세 차례에 걸쳐 열렸다. 마지막 대화의식탁인 대화의행복에 함께했다.


0. 시작하며

대화의식탁이 차려지고 세 사람씩 팀을 이뤄 옹기종기 앉는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각자가 부를 오늘의 별명(Nick)을 정한다. 대화의식탁은 안내자가 있어 전체 대화를 이끌기도 하고 안내자 없이 참가자들이 대화의 물꼬를 트고 깊이를 더하기도 한다. 이번 대화의식탁은 참가자들끼리 질문카드를 빌려 자연스럽게 소통했다. 질문카드는 애피타이저 7가지, 메인디쉬 6가지, 디저트 7가지가 주어졌다. 전체 진행은 자유학교 대화의 식탁 안내자(퍼실레이터) 과정을 이수한 지관서가 매니아들이 맡았다.


1. 듣고 생각하다

대화의식탁이 시작되기 전. 안내자 역할을 맡은 임성애 지관서가 매니아가 그림책 ‘대추 한 알’(장석주 글, 유리 그림, 이야기꽃)을 빌려 참가자들의 긴장을 푼다. 그림책 속 장석주 시인의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우리의 삶 또한 그렇게 태풍과 천둥과 벼락 속에서 익어간다는 비유일 텐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 역시 다르지 않다. ‘무서리 내리는 몇 밤’ ‘땡볕 두어 달’‘초승달 몇 낱’이 더해져 둥글어진다.

 

대화의식탁에 참여한 경험자 영글이 먼저 말문을 연다.

“낯선 분들이랑 앉으면 알 수 없는 서먹함이 있는데요. 대화를 하다보면 사라지더라고요.”

영글은 자신의 이름 가운데 ‘영’과 좋아하는 ‘글’쓰기에서 한 자씩 딴 이름이다. ‘영글다’는 뜻도 있다. 이소비는 이솝우화에서, 병덕은 태어나기도 전에 지어졌으나 결국은 자신의 이름이 되지 못했던 옛 이름을 별명으로 썼다.

 

애피타이저의 첫 질문은 ‘내가 자주 하는 척은 무엇인가요?’. 아는 척,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차례로 나온 답들은 어쩌면 자신의 단점에 가까울 텐데 곧 ‘나도 그런데!’하는 맞장구에 안도한다. 실은 누구나 한 번씩은 하는 척이기도 하다. 다음 메인디쉬의 첫 질문은 ‘나를 솔직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대화의 맛이 조금 더 깊어진다. 각자의 답은 엄마라서, 딸이라서 조금씩 달라진다. 하지만 그 답들은 반대로 자신의 엄마나 딸에게는 물을 수 없어 듣고 싶었던 답이기도 하다.

 

디저트의 마지막 질문은 ‘지금까지 대화에서 발견한 나는 어떤 사람 같나요?’. 하지만 병덕의 제안으로 새로운 질문이 더해진다. 같이 대화를 나눈 '당신은 어떤 사람인 것 같습니다'까지 말해주기. 대화의 시작은 자신의 단점을 고백하는 것이었는데 대화의 끝에서 이들은 서로의 장점을 말하며 응원하고 있다. 그래서 이소비의 소감은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한 오늘의 대답이기도 했겠다.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에너지를 얻을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세상 밖에서 병든 마음을 오늘 이 자리에서 치유하고 갑니다.”


2. 책을 빌려 질문하다

‘대화의 식탁’은 그 대화의 풍경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 장생포 지관서가는 버려진 냉동창고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한 곳이라서, ‘일’을 인생테마로 큐레이션한 서가라서, 가족과 자신의 일 사이에서 고민하던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장생포 지관서가에서, 그 여운이 이끈 책은 뜻밖에도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심채경, 문학동네)였다. tvn ‘알쓸인잡’에 출연한 심채경 천문학자가 쓴 책으로 제목이 마음을 움직였다. 천문학자가 별을 보지 않는다니? 그 너머를 본다는 의미 정도로 지레 짐작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그 가운데 ‘계절이 지나가나는 시간‘을 펼쳐 읽다가, 오늘 서로의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눈 이들에게 책 속 한 단락을 읽어주고 싶어졌다.

‘내가 고요히 머무는 가운데 지구는 휙, 휙, 빠르게 돈다....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빠르게 나아가는 중이라고. 잠시 멈췄대도, 다 괜찮다고.“


3. 참가자 ‘김미하(이소비)’ 님과 대화하다

김미하 씨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다. 방어진에 살아서 종종 장생포 지관서가를 찾는다. ‘대화의 식탁’이라는 표현이 편안해 보여 꼭 한 번 참석하고 싶었다. 프로그램의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막상 와서 보고는 낯선 사람과 이야기 해야 해서 적잖이 긴장했다. 그런데 친한 사람에게도 못하던 이야기를 술술 꺼내는 자신의 모습이 조금 놀랍기도 했다. 특히 딸 또래의 병덕과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고. 20대인 병덕이 겪은 아픔은 김미하 씨의 딸의 고민과도 닮아 있어 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딸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병덕에게 들려주었다. 병덕은 돌아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 해야겠다’ 화답했다고. 물론 딸의 엄마로서 뿐 아니라, 그 자신의 일과 생활에 있어서도 뜻깊은 시간이었다.

“내가 지금 잘못 살고 있나?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대화의식탁에서 이야기 나누고 나서는 잘 살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힐링하고 가는 것 같아요.”


Q. 김미하의 지관(止觀, 멈추어 바라봄)의 순간은?

일이 휘몰아치듯이 오니까 내 시간이 없는 편이에요. 조금 허무하기도 해요. 그럴 때는 크게 숨도 한 번 쉬고 하늘도 보고 그러죠. 그런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고 가지려고 노력은 하는데 사실 잘 안 돼요. 오늘 대화의 식탁에 함께하면서 자주 멈춰 서서 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고 칭찬해줘야 되겠다 싶어지네요.




필자_박상준 여행작가

영화와 여행주간지 취재기자를 거쳐 여행작가로 지내고 있다.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100', 다른 제주에 가다', '엄마 우리 여행 가자' 등을 썼다. 서울 부암동 3평 카페 '유쾌한 황당'에서 공연, 연극, 전시 등 재미난 문화행사를 기획했다. 현재는 원주에 산다. 요즘은 책, 편지, 건축 등을 주제로 한 여행에 관심이 많다. 여행스토리텔링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